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논란 (문단 편집) === 직업의식 부족 ===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의 운행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승무원은 탑승자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는 직업이다. 특히 이번 사고처럼 구조가 복잡한 대형 선박의 경우 선장부터 말단 직원들까지 체계적인 위급상황 관리능력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크고, 그에 따라 문서화된 비상상황 대처 매뉴얼이 존재하고 정기적인 비상시 대처훈련을 하는 이유다. 특히 세월호에 탑승한 대다수의 승객이었던 고등학생들은 아직 판단력이 부족한 [[미성년자]]들이며 초기에 선체에 이상이 발생하고, 구명조끼를 착용하라고 지시한 이후 지속적으로 방송을 통해 선실 내부에 머물러 있으라는 지시를 반복해놓고 추가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은 점이 이번 사고의 피해를 키운 가장 큰 이유라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교사들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들을 수밖에 없는 [[학생]] 특성상 방송만 믿고 있었고, 인솔 교사들도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아서, 계속 선실 내부에만 대기하고 있다가 탈출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오히려 갑판에 나와있던 사람들은 바다로 뛰어 내리거나 난간을 잡고 끈질기게 버티다가 구조된 경우가 상당하다. 세월호를 구조하러 간 배들 중 가장 먼저 도착한 [[유조선]] 두라에이스(2720t)호가 세월호에 200m 지점까지 접근했을 시점인 9시 23분경에, [[선장]]의 퇴선명령이 내려져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로 뛰어들기만 했다면 대부분 구조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9시 23분경에는 배의 좌현 쪽도 거의 침수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태평양]] 한복판 같은 망망대해도 아니고 육지[* 가장 가까운 육지는 [[섬]]인 [[동거차도]]로 불과 1.5km.]에서 가깝고 당시 구조하기 위해 경비정과 근처에 있는 수십척의 배들 대부분이 세월호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선원들의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대처와 승객들(특히 단원고 교사진)의 해난 긴급 상황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인해 일어난 판단 착오가 대형 참사를 부른 것이다. 일종의 권위가 만들어낸 오판과 참사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승무원이 승객이 모이게 돼서 선체가 빠르게 기울어지게 될 것을 우려했는지[* 사실 이는 기우다. 7천톤급인 배 무게에 비하면, 사람 몸무게 몇 백명분은 그냥 무시해도 되는 수준이다.] '객실에서 대기하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합니다', '객실이 더 안전하겠습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한 것도 피해를 키웠다.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에서는 잠수가 어렵기 때문에, 침몰하는 배 안으로 물이 들어오면 탈출이 더 어렵다. 물에 빠졌을때 구명 조끼를 입는다면 생존율이 크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구명 조끼를 입어봐야 물이 천장까지 차버리면 무용지물이기 때문. [[에티오피아 항공 961편 납치 사건]] 문서를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이타닉(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설계자의 판단에 의해 배의 침몰이 확실시 된 이후에는, 모두 갑판으로 나오라는 선장의 지시가 있었다. 그리고 객실안으로 다시 승객들이 상황을 오판해서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갔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박의 구조와는 별 연관이 없는 일반직 승무원이 최후까지 남아 구조활동을 하다가 숨진 채로 발견되는 등, 자신들의 의무와 책임을 망각한 일부 중요 승무원들의 직업의식 결여가 피해를 키운 원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세월호에서 먼저 탈출한 선박직 선원 중 12명은 무전기로 연락을 주고 받은데다([[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40421000690&md=20140421111601_BH|#]]) 선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통로를 이용해 빨리 탈출할 수 있었던 걸로 밝혀졌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3888.html|#]]). 게다가 선장이 승객인 척 몰래 빠져나왔다는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41837708|증거 영상이 발견]]되었다! 이는 2년 반 전에 일어났던 [[설봉호 화재 사고]]에서의 선장 및 승무원들과 대비된다. 한밤중인 새벽 1시에 배에 화재가 났으나 선장 및 승무원들은 객실을 돌아다니며 승객을 깨워 대피시켰고, 전원 무사히 구조되었다. [[파일:attachment/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논란/세월호비상상황시승무원임무.jpg]] 또 다른 문제점으로 떠오르는 것이 해당 사고 선박에 승선한 선장이 임시였던데다 계약직 직원이라는 거였다. 사실 선사 계열에서 비정규직은 흔한 일이었지만[* 사무직 외엔 대부분 1년 단위로 계약하는 비정규직이 흔하다고 한다. 문제가 없진 않으나,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지금까지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http://news1.kr/articles/1640854|이 기사]]에서도 언급하듯 아예 문제가 없다고 하긴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비정규직이란 이유만으로 이번 참사가 일어났다고 문제 삼는 것은 선사업계 직원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따라서 비판해야할 대상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위주로 구성하게 된 사회적 구조에 대해 비판해야할 것이다.], 계약직 선장은 정규직 선장과는 달리 '''선박 통제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 통설이다. 거기다 선장뿐만 아니라 전체 승무원의 절반이상, 갑판·기관부 선원의 70%가 비정규직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당일 근로계약서도 없이 불려와서 일단 출항 후 귀항하면 계약서 쓰자고 해서 배를 탄 계약직도 있었으며, 아르바이트 인력도 3명이나 채용했다고...[[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4190600035&code=940202|#]] 이 정도면 선사가 비용절감에 정신팔려 안전은 신경쓰지도 않았다고 할 판이다. 세월호의 진짜 선장인 신보식 씨는 이 날 휴가를 갔고[* 나중에 알려지기를, 그가 휴가를 낸 건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선박개조|개조에 문제가 있다고 계속 이야기했는데 회사가 이를 무시]]해 계속 배를 타기엔 불안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대타로 들어온 게 사고 당시의 선장이었는데, 이 때문에 사고가 나도 대처가 미흡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추가로 사고 당시의 선장은 선장경력은 30년이지만, 세월호 선장으로서의 경력은 1년 미만이였다고 한다. 즉, 세월호에 아직 적응조차 못했다는 것이다. 4월 23일에 밝혀지기를, 세월호의 실세는 선장이 아니라 기관장이었고 선원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린 것도 기관장이었다고 한다([[http://news1.kr/articles/1645196|#]]). 게다가 4월 26일에 밝혀진 바로는 사고 당시 선장은 청해진해운과 통화를 했다고 한다. 단순히 사고 상황만 보고했는지 청해진해운이 뭔가 지시를 했는지에 대해선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보험금 때문에 청해진해운이 퇴선 명령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 나왔다.[[http://news1.kr/articles/1650691|#]] 한편 선장 및 3급 항해사, 조타수는 구속된 이후에도 딱히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치장에도 세월호 관련 뉴스를 틀어주고 있는데, 가끔 그걸 보면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세끼 밥도 꼬박꼬박 잘 먹고 낮잠도 잘 잔다고 한다.[[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42301030527150002&w=nl|#]] 다만 3급 항해사만은 여자인 데다가 나이도 비교적 젊어서 구조 초반에는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가 최근에 회복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체포 당시에는 정신적 충격이 심해서 말을 걸 수 조차 없는 상황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